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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유나이티드 사령탑으로 부임한 최상국 감독은 교수 출신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준비를 마쳤다.
1980년대 K리그를 이끌었던 ‘포철맨’ 최상국(54) 감독이 K3 챌린저스리그 무대에 사령탑으로 출사표를 던진다. 지난해 12월 서울유나이티드 사령탑으로 부임한 그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최상국 감독은 80년대를 풍미한 슈퍼리그(K리그의 전신)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였다. 1983년 테스트를 통해 포항제철(이하 포항)에 입단한 그는 91년까지 포항의 ‘원클럽맨’으로 활약해 두 차례 리그 우승(1986, 1988년)을 이끌었다. 1987년은 그에게 더욱 특별한 해였다. 당시 최 감독은 국내선수 최초로 리그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소속팀에서의 활약과는 달리 대표팀에서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최 감독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예선에는 뛰었으나 본선 최종명단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출전했지만 2무 1패라는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을 맛봐야 했다. 다시 재기를 노렸지만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최종명단에서도 다시 한번 좌절을 겪었다. 최 감독은 “꿈의 무대인 월드컵 본선에서 뛰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고 했다.

최 감독의 선수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1년 30세의 이른 나이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이후 최 감독은 20여 년간 대학무대(청주대 12년, 호원대 10년)에서 지도자 생활을 계속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배움의 끈도 놓지 않았다. 선수를 가르치는 동시에 공부를 병행하며 교수의 꿈도 이뤘고, 체육학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최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변신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최근 정들었던 대학무대를 떠나 챌린저스리그 서울유나이티드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최 감독을 만나 ‘포철맨’의 스토리와 서울유나이티드에서의 포부를 들어봤다.

-포철제철(현 포항스틸러스)의 ‘원클럽맨’으로 활약하며 두 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선수들도 잘했지만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감독과 선수, 그리고 팀이 하나가 됐고 그 결과 두 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1987년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냈지만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해 아쉽다. 대우와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쳤지만 조금 부족했다. 만약 우승했다면 3연속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1987년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한국인 최초로 K리그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했다.
“당연히 기억난다. 내가 득점왕과 도움왕을 차지했던 것도 모두 동료들 덕분이다. 우선 동료선수들이 내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잘 도와줬고 그에 맞춰 나도 협력하다 보니 도움왕 타이틀도 얻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선수를 꼽으라면) 이흥실 선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패싱력이 아주 좋았다.”(이흥실은 1989년에 도움왕을 차지했다)

-태극마크와는 인연이 없다. 특히 월드컵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을 것 같다.
“월드컵은 축구선수들의 꿈의 무대다. 그런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던 것이 선수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두 번이나 월드컵 무대에 도전했지만 최종명단에서 떨어졌다. 그건 나의 성격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도 강했다. 그래서 지도자, 동료와 동화되지 못했다. 아쉬울 따름이다.”

-이른 나이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다. 은퇴 당시 나이가 30세였다. 축구선수로는 완숙기로 접어드는 시기다. 한창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감독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밑에서 올라오는 후배들에 떠밀려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20년간 대학무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끝내고 올해 서울유나이티드로 부임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청주대와 호원대에서 20여 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며 공부도 했다. 교수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 전 그 꿈을 이뤘다. 당당히 교수로 발령받아 축구학 강의를 진행했다. 교수로서 꿈을 이뤄서 기뻤다. 그러나 나의 도전을 자극하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지도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프로팀 감독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울유나이티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또한 서울유나이티드라는 팀과 선수들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이끌렸다. 큰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팀과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부임 이후 특별한 공개테스트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1차에 떨어진 선수들에게도 마지막 공개테스트를 한 번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들었다.
“모든 것은 희망에서 시작된다. 지도자가 한번 봐서는 알 수 없다. 당시 실력 있는 선수들도 운이 좋지 않아 눈에 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 두세 번이라도 테스트가 있으면 오면 된다. 단 한번으로 그 선수를 판단할 수 없다.”

-테스트에 떨어진 혹은 진로 문제로 힘들어하는 축구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10년 동안 해왔던 축구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쉽겠지만 오히려 더 좋은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 길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더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서울유나이티드에서 목표는 무엇인가?
“선수들을 처음 만나서 ‘희망을 버리지 말자.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왔다. 희망을 가지고 한번 해보자’라고 말했다. 감독이라면 누구든지 우승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나는 우승보다 이 팀을 잘 관리해 좋은 팀으로 만들고 싶다. 또한 우리 선수들이 훗날 다른 선수들의 희망이 되어 더 상위리그로 올라 갈 수 있도록 성장시켜주고 싶다.”

-또 다른 꿈이 있다면?
“프로팀 감독이 또 다른 나의 꿈이다. 축구지도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꿈이 아닌가. 기회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지만 그 꿈을 위해서 조금씩 노력하면 더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상국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 : 1961년 2월 15일
선수경력 : 포항제철 아톰즈(현 포항스틸러스) (1983~1991) - 159경기 32골 / 국가대표(1983~1989) - 18경기 8골
지도자 경력 : 청주대학교(1992~2003) - 호원대학교(2004~2013) - 서울유나이티드(2014.12~현재)
주요 수상 이력
- K리그 우승 2회(1986,1988)
- K리그 득점왕-도움왕(1987)
- K리그 베스트 11(1987)

글=구병온
사진=서울 유나이티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