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K3리그의 초대 챔피언을 가리는 현장에 있었다. 잠실 주경기장 관중석 사이로, 손바닥만한 초겨울 햇볕이 내려앉는다. 클럽의 창단 첫 해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검은색과 흰색의 줄무늬로 상징되는 서울 유나이티드 지지자들이 넘실댄다. 달콤한 탄산음료 냄새가 감돌 것 같은 가을의 잔디밭, 그리고 같은 색깔의 사람들이 있는 풍경은 어쩐지 코끝이 찡해진다.
그러나 곧, 그 틈새로 남다른 푸른색이 끼어든다. 하얀 우유에 코코아 분말이 떨어진 것 같았다고 할까. 이질적인 푸른색, 분명 K리그 팀의 유니폼이 틀림없다. 어째서 이곳에, K3리그이며, 서울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며, 지지자들이 모여 서포팅을 하는 그 곳에 그 푸른색을 나타나게 된 것인지 경기 내내 의아해 한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명백하게 누구인지 알 것 같은 그 푸른색 유니폼의 정체는 충분히 의아함을 줄 수 있다.
축구팬은 그가 입은 티셔츠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부산대우 로얄즈 시절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면, 구덕운동장에서 한번쯤은 마주쳤을 지도 모른다. 그가 대전 시티즌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정열적인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른다. 혹은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세르비아를 '라데의 나라'라고 기억할지도 모르며, FC 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연고지 이전의 아픔이나 책임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축구팬에게 티셔츠는 그가 어떤 팀을 지지하는가의 절대적인 문제의 답을 알려주는가 하면,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알려주는 기초적인 단서가 될 수 도 있다. 티셔츠 한 장이 말이다.
길을 지나다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게 되는 유니폼은 요즘은 단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박지성 효과인지, 원체 인기 많은 빅 클럽이기 때문인지 분간이 안가긴 하지만, 메인 스폰서의 로고 글씨가 너무 큰 탓에 내 취향은 아니다. 그 다음은 워낙 소수이기 때문에 지지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벗어나, 패션 아이템으로서 가치가 있는 겉옷까지 포함하자면, 아스널의 레인 자켓이나 레알 마드리드의 후드 자켓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눈치 챘겠지만, 유럽 빅 클럽들의 것이 대부분이다.
축구장을 제외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학교나 직장을 갔을 때 말이다. 그럴 경우, 아스널의 레인 자켓에 루즈핏의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고 하자. 사람들은 대개 나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쯤으로 여기고, 스포츠룩의 일부로 보이는 자켓에 대한 관심을 접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얀 티셔츠 위에 부산 아이파크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자리에 나갔다고 하자.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 된다.
특이한 티셔츠네요. 라든가, 선물 받으셨어요, 라든가. 이 티셔츠가 축구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의 같은 재질의 것이고, 보통 우리가 티셔츠 한 장에 지불하는 돈보다 비싼 축에 든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게다가 이것이 K-리그 구단 중 하나의 유니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순간 아, 축구 좋아하시나봐요- 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진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축구와 축구 바깥 세계 말이다.
티셔츠 한 장이 어째서 커밍아웃의 소재가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겪어보면,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취향일 뿐인데 굉장한 오타쿠 취급에 불편해 지는 일도 있다. 어쨌든, 경기장을 찾을 때가 아니면 입지 않고 고이 옷걸이에 걸어두는 유니폼은, 그래도 축구팬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 아이템 목록 1호다.
선수의 등번호를 유니폼에 새기는 마킹은 또 어떤가. 선수의 백넘버는 선수가 가진 재능과 보여준 기량을 상징한다. 우리는 7번과 5번 혹은 18번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내 티셔츠에 새겨진 선수의 이름의 백넘버는 정신적인 커넥션을 상징한다. 아버지들이 딸이나 아들의 사진을 지갑에 끼우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들의 선전은 나의 자부심이 되며, 다음에 경기장을 찾을 원동력이 된다. 마킹은 마치, 유니폼을 입는 행위에 대한 마지막 방점, 화룡점정과 같다.
그래서, 이 티셔츠는 선수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티셔츠 판매원'이라는 다소 오명에 가까운 단어의 탄생에서 엿볼 수 있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팡저우와 같은 경우, 어린 나이에 퍼거슨 감독의 낙점을 받아 팀에 합류한 그를 두고 검증이 안 된 실력의 선수를, 중국 10억 인구를 상대로 마케팅 차원에서 데려왔다는 비난을 들었다.
축구 근처의 사람들에게는 꿈의 도착점인 유럽의 빅 리그, 그 중에서 잉글랜드의 EPL, 그 중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면, 그리고 그 유니폼에 동팡저우의 마킹이 되어있다면, 중국인들에게 그 상품가치가 한층 상승할 것임은 불 보듯 뻔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에는 동팡저우 자신이 나는 티셔츠 판매원이 아니다 라는, 다소 불편한 인터뷰를 할 정도였으니, 티셔츠 판매가 그의 운명을 EPL로 이끈 이유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데 있어서 그는 꽤 억울한 심경일 것이다.
다시 티셔츠로 돌아와서,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결국은- 티셔츠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누구나 무엇이든 입을 자유가 있지만, 한번 선택해서 입고 나면 벗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대부분은 평생 똑같은 팀의 티셔츠를 입고 살아가는 일이 대부분이 특별한 티셔츠 말이다.
티셔츠를 입었다는 사실 만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하겠지만,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특별한 티셔츠를 입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티셔츠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동조해준다면 기쁠 것이다.
티셔츠가 의미 있는 까닭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내 팀의 선수들이 그 옷을 입고 뛰기 때문이 아닐까. 나와 같은 티셔츠를 입은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땀과 인생을 바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 그들의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다는 연대감의 출발선이며, 자신에게 부여하는 또 다른 사회적인 정체성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봄이다. 티셔츠를 입자. 어느 팀의 것이든 좋다. 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축구팬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라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조혜연(스포탈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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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곧, 그 틈새로 남다른 푸른색이 끼어든다. 하얀 우유에 코코아 분말이 떨어진 것 같았다고 할까. 이질적인 푸른색, 분명 K리그 팀의 유니폼이 틀림없다. 어째서 이곳에, K3리그이며, 서울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며, 지지자들이 모여 서포팅을 하는 그 곳에 그 푸른색을 나타나게 된 것인지 경기 내내 의아해 한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명백하게 누구인지 알 것 같은 그 푸른색 유니폼의 정체는 충분히 의아함을 줄 수 있다.
축구팬은 그가 입은 티셔츠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부산대우 로얄즈 시절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면, 구덕운동장에서 한번쯤은 마주쳤을 지도 모른다. 그가 대전 시티즌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정열적인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른다. 혹은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세르비아를 '라데의 나라'라고 기억할지도 모르며, FC 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연고지 이전의 아픔이나 책임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축구팬에게 티셔츠는 그가 어떤 팀을 지지하는가의 절대적인 문제의 답을 알려주는가 하면,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알려주는 기초적인 단서가 될 수 도 있다. 티셔츠 한 장이 말이다.
길을 지나다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게 되는 유니폼은 요즘은 단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박지성 효과인지, 원체 인기 많은 빅 클럽이기 때문인지 분간이 안가긴 하지만, 메인 스폰서의 로고 글씨가 너무 큰 탓에 내 취향은 아니다. 그 다음은 워낙 소수이기 때문에 지지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벗어나, 패션 아이템으로서 가치가 있는 겉옷까지 포함하자면, 아스널의 레인 자켓이나 레알 마드리드의 후드 자켓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눈치 챘겠지만, 유럽 빅 클럽들의 것이 대부분이다.
축구장을 제외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학교나 직장을 갔을 때 말이다. 그럴 경우, 아스널의 레인 자켓에 루즈핏의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고 하자. 사람들은 대개 나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쯤으로 여기고, 스포츠룩의 일부로 보이는 자켓에 대한 관심을 접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얀 티셔츠 위에 부산 아이파크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자리에 나갔다고 하자.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 된다.
특이한 티셔츠네요. 라든가, 선물 받으셨어요, 라든가. 이 티셔츠가 축구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의 같은 재질의 것이고, 보통 우리가 티셔츠 한 장에 지불하는 돈보다 비싼 축에 든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게다가 이것이 K-리그 구단 중 하나의 유니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순간 아, 축구 좋아하시나봐요- 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진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축구와 축구 바깥 세계 말이다.
티셔츠 한 장이 어째서 커밍아웃의 소재가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겪어보면,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취향일 뿐인데 굉장한 오타쿠 취급에 불편해 지는 일도 있다. 어쨌든, 경기장을 찾을 때가 아니면 입지 않고 고이 옷걸이에 걸어두는 유니폼은, 그래도 축구팬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 아이템 목록 1호다.
선수의 등번호를 유니폼에 새기는 마킹은 또 어떤가. 선수의 백넘버는 선수가 가진 재능과 보여준 기량을 상징한다. 우리는 7번과 5번 혹은 18번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내 티셔츠에 새겨진 선수의 이름의 백넘버는 정신적인 커넥션을 상징한다. 아버지들이 딸이나 아들의 사진을 지갑에 끼우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들의 선전은 나의 자부심이 되며, 다음에 경기장을 찾을 원동력이 된다. 마킹은 마치, 유니폼을 입는 행위에 대한 마지막 방점, 화룡점정과 같다.
그래서, 이 티셔츠는 선수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티셔츠 판매원'이라는 다소 오명에 가까운 단어의 탄생에서 엿볼 수 있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팡저우와 같은 경우, 어린 나이에 퍼거슨 감독의 낙점을 받아 팀에 합류한 그를 두고 검증이 안 된 실력의 선수를, 중국 10억 인구를 상대로 마케팅 차원에서 데려왔다는 비난을 들었다.
축구 근처의 사람들에게는 꿈의 도착점인 유럽의 빅 리그, 그 중에서 잉글랜드의 EPL, 그 중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면, 그리고 그 유니폼에 동팡저우의 마킹이 되어있다면, 중국인들에게 그 상품가치가 한층 상승할 것임은 불 보듯 뻔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에는 동팡저우 자신이 나는 티셔츠 판매원이 아니다 라는, 다소 불편한 인터뷰를 할 정도였으니, 티셔츠 판매가 그의 운명을 EPL로 이끈 이유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데 있어서 그는 꽤 억울한 심경일 것이다.
다시 티셔츠로 돌아와서,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결국은- 티셔츠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누구나 무엇이든 입을 자유가 있지만, 한번 선택해서 입고 나면 벗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대부분은 평생 똑같은 팀의 티셔츠를 입고 살아가는 일이 대부분이 특별한 티셔츠 말이다.
티셔츠를 입었다는 사실 만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하겠지만,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특별한 티셔츠를 입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티셔츠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동조해준다면 기쁠 것이다.
티셔츠가 의미 있는 까닭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내 팀의 선수들이 그 옷을 입고 뛰기 때문이 아닐까. 나와 같은 티셔츠를 입은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땀과 인생을 바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 그들의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다는 연대감의 출발선이며, 자신에게 부여하는 또 다른 사회적인 정체성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봄이다. 티셔츠를 입자. 어느 팀의 것이든 좋다. 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축구팬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라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조혜연(스포탈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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