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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9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K3 챌린저스 리그 서울 유나이티드의 공개 테스트가 열렸다. 차갑고 허전했던 잔디는 이내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참가자는 총 54명이었다.

"압박! 라인 맞춰! 패스! 나이스 골!" 

12월의 마지막 월요일인 지난 29일 서울 효창운동장에는 걸죽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겨울 찬 공기를 뚫고 비지땀을 흘리는 선수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들은 아마추어 K3리그 서울 유나이티드의 공개 테스트를 받기 위해 모인 아마추어들이다. 

“지금 이래도…” 어제는 아마추어, 내일은 국가대표  
이날 오전 11시부터 경기장 곳곳은 각기 다른 트레이닝복 차림의 선수들이 각자 몸을 풀었다. 추운 날씨 탓에 두꺼운 옷차림으로 입김을 불어가며 공을 찼지만 표정은 비장했다. 

라커룸에서 조용히 다른 선수들의 테스트를 지켜보던 한 선수는 “긴장은 되지만 (긴장을)하면 안 되니까…”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얼마 전까지 같은 K3 챌린저스 리그에서 다른 팀에서 뛰었던 그는 휴식기에 마냥 쉴 수 없어 공개 테스트를 보러 왔다. 초등학교 때 운동을 시작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선수의 길을 택했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하위리그를 전전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테스트에 참가했다. 

그는 “지금은 무명이지만 언젠가는 상암(월드컵 경기장)같은 곳에서 뛰는 유명한 선수가 될 것”이라며 라커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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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테스트 참가자를 바라보는 선수들. 수만 가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사연도 피부색도 다양한 선수들 
추운 날씨에 관중석에서 홀로 아들을 응원하던 한 어머니는 “태국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아들은 중학교 때축구를 그만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년 전, 그 꿈을 버리지 못해 공개 테스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작년에는 영국으로 날아가 선진 축구를 배우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꿈을 포기하는 것이 더 힘들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지지하고 있다”며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축구 선수를 하고 싶어한다”며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대화 내내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옆자리에는 담요와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이 있었다. 

몸을 풀던 선수들 속 유난히 피부색이 눈에 띄는 두 선수가 있었다. “라이베리아(Liberia)에서 2달 전에 왔다”며 스트레칭을 하던 두 외국인 선수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추억을 남겼다. 

사진 속에서는 해맑지만 사실 이들은 난민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내전 등을 피해서 낯선 한국 땅으로 왔다. 한국에 사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번 테스트에 참가하게 됐다. 이들은 고향에서 개인훈련을 하다가 태국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테스트가) 긴장되지 않다”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실제로 이날 경기를 지켜본 감독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선수는 이 두 사람이었다. 

테스트가 시작됐다. 한 선수가 돋보였다. 그라운드에서 가장 키가 작은 선수다. 새터민 출신의 이 선수는 북한 축구팀의 유소년 선수였다. 2012년 1월 두만강을 건너 그해 3월 한국에 왔다. 그의 아버지는 현재 북한에 남아 고등학교 축구팀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1년 6개월간 혼자 연습을 하며 테스트를 받았다. 빠른 발로 상대 수비를 휘저었던 이 오른쪽 날개 공격수는 "꼭 프로 선수가 돼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여전히 좁은 문, 그러나… 
이날 테스트에는 1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서류 심사를 통해 추린 54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그리고 이 참가자 중 16명의 선수가 최종 합격했다. 

이 치열한 공개 테스트에 합격해도 이들은 아직 프로가 아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프로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먼저 아마추어 리그(K3리그)에서 한 번이라도 더 프로 구단의 눈도장을 받아야 한다. 치열하고 힘들지만 이들은 좀체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 선수가 테스트가 끝난 라커룸에서 바나나를 먹으며 짐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문을 나가면서 “(안 되도)계속 도전할 것이다”라며 웃어보였다. 미디어가 관심을 갖지 않는 이런 선수들은 얼마나 많을까? 새해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절로 생긴다. [헤럴드스포츠=지원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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